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읽기 전에 사는 물건이다.
서양의 비평가 하나가 이런 말을 했다지? 나는 책을 빌려줄 때 결혼하지 않고 남자와 동거하는 딸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된다. 내가 아직까지 고집피우는 것 중 책과 관련된 것이 두가지나 있다. 책은 반드시 사서 볼 것 책은 남에게 빌려주지 말 것 그리고 인사 대신 건네는 안부를 묻는 말 요즘 무슨 책 읽니? 2012년 가을... 책 읽기 좋은 계절이다. ![]() 且夫天地之間 物各有主 대저 천지 사이의 사물에는 제각기 주인이 있어
내 소유가 아니면 비록 한 터럭일지라도 취할 수 없지만 惟江上之淸風 與山間之明月 오직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 사이 밝은 달은
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빛이 되어 取之無禁 用之不竭 이를 가져도 막는 이 없고, 이를 써도 다함이 없으니
是造物者之無盡藏也 而吾與者之所共樂 이야말로 조물주(造物主)께서 다함이 없이 감추어 놓은 것이니 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
구교(천주교)의 폐단과 악습을 부정하고 새롭게 출발한 개신교는 어찌하여 아직도 구교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그 테두리 안에서 표류하고 있는가? 천주교회는 교회의 권한과 책임이 성경 위에 있다하고 개신교회는 성경을 가장 높은 권위이며 교회는 그 아래라고 가르친다. 그런데 66권을 선별하여 성경이라 이름 붙인자들이 누구인가? 개신교회는 천주교의 영향력 아래에서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. 오히려 각각 채택한 성경의 번역본과 범주에서 알 수 있듯이 천주교보다 더 폐쇄된 집단성과 그릇된 정통성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는지.....
일찌기 이탁오는 왜곡된 공맹 사상을 공격하며 이렇게 저술하였다. 무릇 육경과 논어 맹자는 역사를 쓰는 사관들이 지나치게 높이 추켜 세운 말이 아니면 , 신하들이 극히 찬미한 말의 기록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. 그렇지 않으면 멍청한 문도와, 흐리멍텅한 제자들이 스승의 학설을 기억하되, 머리는 있고 꼬리는 없으며 앞은 얻었는데 뒤를 잃어 버려서 그 소견에 따라 책에다 써놓은 데 불과하다. 그럼에도 후학들이 그것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그것이 모두 성인의 입에서 나왔다고 말하면서 차례를 정해 경전으로 만들었으니 그 태반이 성인의 말이 아닌 줄 누가 아는가? 비록 그것이 성인으로부터 나왔다 하더라도, 그 때 무엇인가 유익해서 찾아낸 것으로 병에 따라 약을 짓고 때에 따라 처방한 것인데 가장 멍청한 제자들과 흐리멍텅한 문도들이 이를 가지고 세상을 구제한다고 했을 뿐이다. 약과 의사는 병에 따라야지 정해진 한 처방만을 고집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, 이 어찌 한 가지로 만세에 변할 수 없는 최고의 이론을 삼을 수 있단 말인가? 어찌 유학자들을 비판하는 말로만 듣겠는가? 성경을 제일로 삼아 그것으로 상대의 믿음을 공격하고 제 주장을 입맛대로 펼치는 사람들아, 새겨들을 것이니 그대가 그토록 중시하는 성경은 하나님 말씀의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니 눈 열고 귀 열어 지금 그대에게 하시는 하늘의 뜻을 분별할 것이라.
공자와 맹자의 학문은 성(性)을 다하고 명(命)을 지극히 하는 학문이다. 그런데 그 말이 너무 간단하고 가르침이 깊어서 그 말하는 뜻을 다 알 수가 없다. 불교의 여러 경전들이 발명한 바가 바로 이 유교 경전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가 된다. 진실로 이러한 불교의 이론들은 우리 유교의 성명의 학문을 위해 능히 지남석(指南石)이 될 수 있은즉, 불교의 여러 경전은 공자, 맹자의 뜻을 해석한 것일 수 있는데, 어찌 이를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? 무릇 불교의 해석하는 바도 공자와 맹자의 정수와 같다. 한과 송 시대의 여러 유학자가 주를 달고 해석한 바는 오히려 그의 찌꺼기들이었다.
공자에 반기를 들었던 명나라 학자 이탁오의 행적과 사상을 요즘 연구하고 있는데 위 글은 이탁오와 사상을 같이했던 친구 둘 가운데 하나였던 초행이 남긴 글의 일부이다. 유교와 도교 그리고 불교의 경계가 분명했던 그 시대에 이렇듯 열린 학문의 태도로 경전을 대한 그 마음과 태도에 깍듯한 존경심이 절로 인다. 예수가 유일한 그 길임을 알고 믿는 사람은 남은 생애 동안 어느 누구보다 올바른 사람의 길을 걸어야 할진대 수 많은 선각들이 지나며 다져놓은 길들을 차근 차근 따라 걷는 것은 곧 실용적인 경건의 삶을 위한 필수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. 성경을 유일한 경전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만 잡고 상고할 것이 아니라 다른 경들을 참고하여 성경의 가르침을 밝히고 넓히는 일은 오늘날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일이다. 후기 학자들의 쓰레기 같은 주석에 매몰되어 성경의 숲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맬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선지자라 할 수 있는 옛 성현의 글들을 대조하며 참된 삶의 정수를 추적하는 것이 바른 공부라 하겠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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